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58

추석 연휴, 코로나 확진

지난 주 목요일에 걸렸으니, 이제 나흘이 흘렀다. 심하게 아프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무기력했고 밤에 잠을 잘 수 없었으며, 두통과 인후통은 종종 견디기 어려워 약을 먹어야만 했다. 코로나 탓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니 책이나 실컷 읽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약을 먹으면 졸렸고 졸리지 않을 때는 머리가 아프거나 힘이 없었다. 뭔가 집중할 수 있는 체력이 되지 않았다. 남은 격리기간 이틀은 평일 재택 근무다. 아마 쉴 새 없이 전화가 울려댈 것이다. 좀 쉬고 싶긴 한데 말이다. 세상이 혼란스럽게 돌아간다. 이럴 때 기회가 생기는 법인데, ... 나에겐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뭔가 저질러야 되는 건가. 고향집 뒷산에 가서 아버지 계신 곳을 둘러보고 내려왔다. 잡..

misc. 0909

1.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뽑았다는 것부터 한국 보수적인 우파 정당의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여겼다. 뒤이어 이어진 일들을 보면서 황당해서 저 정당은 앞으로 백년간 정권을 잡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2. 문재인과 이재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한국의 보수적인 중도 정당도 별반 달라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이재명은 그 정당으로부터 큰 지지를 못 받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래서 희망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3. 이번 대통령을 보면서도 나는 1에서 언급한 내 생각에 더 큰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 정당은 나라의 미래 따윈엔 관심 없고 어떻게 된 정권을 잡아서 한 탕 할 생각만 있다. (그렇다고 딱히 야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덜 더럽다. 그리고 그 정당에 몇몇 소수는 아직까..

어느 일요일, 도서관

종종 나이를 잊는다. 내가 얼마나 나이가 들었는지 잊곤 한다. 아직 아이가 어리고, 내 마음도 어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아직 어리고 작기만 하다. 그래서 더 자라야 하고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들이 아직 많고 계속 배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하지만 며칠 전 밤 11시까지 야근을 하고 들어와 혼자 소주 한 잔 했더니, 그 피로가 며칠 이어졌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늘 마음 뿐이다. 다들 그렇듯이. 밀린 일들이 많아 일요일 출근을 해야 하는데, 하늘을 보자 그 마음이 사라졌다. 갑작스레 찾아온 가을 날씨는 어색하지만, 내 불편한 일상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렸다. 아이와 함께 아침 미사를 올리고 난 다음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최근 읽고 있는 올리비아 랭의 는 참 좋다. 올..

구름 위로

길을 가다 문득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입체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고대인들의 상상을 떠올렸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더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변하여 이젠 신비로울 지경이다. 그 도저한 신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조심스럽게 기도를 하는 것. 내가 이 동네로 왔을 때만 해도 아파트가 이 정도로 많진 않았는데, 이제 아파트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오래된 낮은 아파트와 빌라들이, 그 낮은 건물들 사이로 더 낮았던 양옥 주택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사이 집값도 올라 서울에 사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 된 요즘, 내일을 위해 살지만 내일은 더 불투명해지고 있었다. 문득 내가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나 떠올려보니, 참으로 암울해서 내일을 생각하지 않았..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 그리고 소나기

임윤찬의 연주를 듣고 라흐마니노프 3번이 저랬지, 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연주자들을 통해 여러 차례 들었으나,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임윤찬의 연주를 듣고 바로 저거지 했다. 조성진이 연주한 것도 듣고, 손열음이 연주한 것도 들었다. 조성진이 대단한 걸 알지만, 나에겐 너무 말랑말랑하다. 난 좀 냉정하고 차가운 소리가 좋다. 그러나 조성진의 피아노는 너무 부드럽고 우아하며 성숙한 느낌이다. 그래서 편안해지며 풀린다고 할까. 조금은 날이 서있는 느낌이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아르투어 미켈란젤리다. 그의 연주는 날이 확실히 서 있다. 손열음의 연주도 좋아한다. 그녀의 연주도 정말 좋다. 그런데 이번 임윤찬의 연주는 오, 압권이다. 사람들이 왜 찬사를 쏟아내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악보도 ..

새벽 빗줄기

새벽 빗소리가 열린 창으로 들어와 방 안 가득한 열기를 밀어낸다.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그 기세를 누그러뜨면서 차가운 습기로 채워진다. 이 습기만 견딜 수 있다면, 제법 청량한 잠을 잘 수 있을 게다, 가족들은. 가끔 이 세계가 존재하고 내가 생각할 수 있고 사랑을 느끼거나 행복을 느낄 때, 신비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그건 호르몬의 영향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만 그 호르몬 모두를 지금 알지 못할 뿐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이 신비 앞에서 파스칼은 끝없는 두려움을 느꼈고 20세기 초반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우리 존재의 목적이나 이 세상의 기원에 대해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다며 절망했다. 그리고 21세기 초반, 백 년 전 그 절망을 현대의 이론 물리학자들이 이어받는다. 책을 읽을수록, 내 지..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고 비가 내리고

서구의 어느 기상학자는 한반도는 4계절이 아니라 5계절이라고 말한다. 봄, 장마(우기), 여름, 가을, 겨울. 우리는 4계절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의 시선에는 우리가 정의내리지 않는 어떤 계절을 지금 지나고 있다. 다행이다. 비가 내려서. 그래서 내륙의 가뭄이 사라지길 기원한다. 봄이 지나자 더위가 밀려들었다. 더위의 위세로 인해 사람들은 기가 죽고 짜증만 낸다. 나도, 아내도, 아이도, 짜증의 바다를 지나며 서로에게 불평을 쏟아내며 빨리 지친다. 프로젝트 상황이 난감해진 지금,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노력 중이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에서 '리추얼ritual'을 항상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같은 활동이라고 정의내리고 있었다. 독일의 한병철은 리추얼이 끝났다고 말하지만, 한 쪽에서는 리추얼의 부활을 말한다...

금요일 오후의 캠핑

한 일이 년 열심히 캠핑을 다니다가 요즘 뜸해졌다. 그 사이 우리 가족 모두가 바빠졌다. 더구나 올해는 아이가 성당 첫 영성체 반에 들어가면서. 나 또한 아이와 함께 일요일 오전 시간을 비워야만 한다. 일요일을 끼고 갈 수 없어 결국 금요일 오후 캠핑을 가기로 했다. 아내는 직장과 학업으로 모든 것에 열외된 상태라, 나와 아이 단 둘이 가는 캠핑이었다. 아빠와 아들, 하긴 단 둘이 여행을 자주 다녔던 터라 별 이상할 것도 없다. 오후 일찍 출발한다는 것이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늦게 출발하여 어두워질 무렵에서야 도착했다. 텐트를 치고 식사를 먹으려고 보니, 밤이다. 피곤했던 탓인지, 집에서 먹다 남긴 와인 반 병과 맥주 몇 캔을 마시고 보니, 취했다. 실은 내가 취한 지도 몰랐다. 나는 아이에게 이제 자..

코로나가 만들어내는 풍경

며칠 재택 근무를 했다. 이제 원격 근무가 가능해진 상태라 업무를 수행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Zoom이나 구글 Meet으로 회의를 할 수 있으며, 크롬 원격데스크탑이나 대부분의 회사에서 사용한 그룹웨어에는 원격 접속이 가능한 기능들이 탑재되어 있다. 사무실 PC에 원격으로 붙어서 작업하는데, 조금 속도가 느릴 뿐, 불편함은 없었다. 아이는 Zoom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고 아내는 코로나 확진으로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와 아이는 계속 음성이 나오다가 결국 아이까지 양성이 나왔다. 이제 내가 걸리는 건 시간 문제다. 그런데 나는 아직 걸리지 않았다. 오늘 내일 걸리겠지 한 게 벌써 1주일이 다 되어 간다. 결국 걸리지 않는 건가. 재택은 쉽지 않다. 의외로 시간이 없고 일을 많이 하게 된다. 사..

코로나 19의 봄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그럴 나이가 되었고 그럴 위치에 올라왔으며 그럴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디테일에 강해야 된다고 말하는 시대이니, 나도 사소한 것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확실히 17세기 유럽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근대성Modernity이란 기본적으로 바로크Baroque적인데, 어떤 목적(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을 극복해내려고 한다. 상당히 전투적이다. 과감하다. 푸생도 그렇고 루벤스도 그렇고 렘브란트도 그렇다. 다만 표현하는 방식(양식)에서의 작은 차이들이 있을 뿐, 기본적인 태도는 근대적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목표를 향해 가면서 겪는 고통마저도 고귀하고 아름답게 표현한다. 그러나 그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