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 27

우리가 꿈꾸는 여유

(갤러리 아트링크의 정원) 일요일 낮에 안국동, 사간동 갤러리들을 돌아다녔다. 청바지에 가방을 매고, 가방 속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철부지 같은 공부의 열정을 증명하듯 몇 권의 책과 노트, 그리고 철 지난 니콘 D70 카메라가 있었다. 수요일 오전, 지난 일요일의 한가로움이 쓸쓸하게 그립다. 회사 건물 1층에 나가, 몇 주만에, 극소량의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을 먹었다. 그러면서 내 일상을 탓했다. 고상한 척 하지만, 고상하지 않고, 강한 척 하지만 절대로 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100%, 한 톨도 남김없이 다 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정말 비극적이고 슬픈 곳으로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아..

월요일

집에 들어오니, 어느새 자정이 지나있다. 지하철 안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크를 읽었다. 세계는 지금 미국식 경제 정책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로 고심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지금 어떻게 하면 (레이건 이후 부시까지 이어진) 미국식 경제 정책들을 잘 도입할 수 있을까 고심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하긴 르몽드 디플로마크라고 하면, 소위 말하는 '좌빨' 저널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으니(내가 읽기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여겨지지만). 지난 주 토요일에는 약 일곱 개 정도의 전시를 챙겨보았다. 약간 불편한 동선이었고 두 개의 약속이 있었던 터라, 정신없이 움직였지만, 몸이 피곤한 만큼 영혼은 꽤 풍요로웠다. (보았던 전시들의 리뷰를 적을 생각인데, 과연 언제 다 적을 수 있을련지~) 일요일에는 아침 8시에 일어나 약간..

슬럼프

예기치 않게 슬럼프가 왔다. 일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 반 나절 정도 못한 일을 오늘 새벽 3시간 동안 끝낼 수 있었다. 지난 금요일부터 심리적으로 불안했고 혼란스러웠으며 견디기 힘들 정도로 우울해졌다. 예전같으면 편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흐트러졌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새벽에 잠을 자기도 했으나, 일어나는 시간은 오전 7시 전후였다. 술을 과하게 마신 날도 있었으나, 취하지 않았고 실수도 없었다. 약간, 혹은 매우 쓸쓸해졌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 주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는 일이 있었다.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째 척 맨지오니의 '산체스의 아이들' 더블 LP를 듣고 있다. 대학시절, 시를 쓰던 친구 자취방에서 듣던 그 느낌 그대로 였다. 교육..

라디오의 잡음

사라져가는 가을의 향기를 못내 아쉬워하는 듯, 비가 내렸다. 올해의 연애도 실패였고 올해의 사업도 성공이라기 보다는 실패의 빛깔에 가까웠다. 독서의 계절은 오지 않았고 작품 감상은 우아해지지 못한 채, 돈에 걸려 넘어지며, 내 감식안을 시험했다. 종일 반쯤 잠에 취해, 술에 취해, 쓸쓸함에 취해 피곤했다. 겨우 밤 늦게 정신을 차리고 설겆이와 청소를 했으나, 나를 행복하게 해줄 어떤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스턴트커피에 오래된 우유를 잔뜩 넣고 죽는 시늉을 했다. 라디오를 틀었으나, 잔뜩 잡음이 끼인 채, 주파수 사이를 헤매며 겨우겨우 내 귀에 도달했다. 내일 약속은 한없이 뒤로 밀려가는 듯 하고 까닭없는 내 사랑도 한없이 뒤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얼마 전 만난 어떤 이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여주었..

행인行人, 나쓰메 소세키

행인行人 나쓰메 소세키(지음), 유숙자(옮김), 문학과지성사 인생은 쓸쓸한 거다.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연인은 떠나가고, 마음 한 켠에 남은 상처는 새벽 네 시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마냥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들이닥친다.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이 현대식 사랑이다. 그러니 다치지 않기 위해 사랑은 한 켠으로 밀어 놓은 지 오래. 하얀 눈이 보기 드문 겨울이 가고 황사 가득한 봄이 오고 나는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과 만나게 된다. 어떤 확신처럼, ‘인생은 쓸쓸한 거다’라고 읊조리지만, 그것을 확인할 때면 가슴 한 쪽이 아려오는 건 어쩌지 못한다. 방 안은 촛불로 인해 소용돌이치듯 동요했다. 나도 형수도 눈살을 찌푸리고 타오르는 불꽃 끝을 응시했다. 그리고 불안한 쓸쓸함이라 형용..

바람, 그리고

시간들이 색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 이들은 바로 인상주의자들이다. 시간 따라 변하는 색채의 현란함, 그 현란함이 가지는 찰라의 쓸쓸함, 그리고 쓸쓸함이 현대인들의 피부를 파고 들어 삶의 양식이 되었음을 깨닫게 해준 이들은 인상주의 이후의 모더니스트들이다. 그리고 그 쓸쓸함은 본래적인 것이며,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견고한 피부를 만들고자 한 이들이 초기의 모더니스트들이라면, 그 쓸쓸함으로부터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순간의 희열 속에 온 몸을 던지는 것이 후기(post)의 모더니스트들이 아닐까. 고객사를 가다 오는 길에 어느 집 담벼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붉은 잎사귀를 찍는다. 하나는 내 혓바닥 같다. 다른 하나는 누구의 혓바닥일까. 지금 나는 누군가의 혓..

에드워드 호퍼

Evening Wind, 1921, etching,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유화에서는 부드럽고 쓸쓸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에칭 판화에서는 거칠고 쓸쓸한 모습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호퍼의 세계란 도시의 쓸쓸함이다. 그리고 그것만 보여준다는 점에서, '난 쓸쓸해'라고 인정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편안함을 던져준다. 그러나 그 뿐. 호퍼는 그 곳에서 멈춰 서서, 그저 쓸쓸하고 외로울 뿐이다. 왜 쓸쓸한 지, 왜 외로운 지 알지도, 알려도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오래 보고 있으면 지루해지고 과연 쓸쓸한 건가 되묻게 된다. 이것이 에드워드 호퍼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