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146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 로베르 브레송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 - 로베르 브레송 지음, 오일환 외 옮김/동문선 너의 관객은 책의 독자도, 공연극의 관객도, 전시회의 관람객도, 콘서트의 청중도 아니다. 너는 그들의 문학적 안목과, 연극적 취향과 회화적 기호와, 음악적 센스의 욕구에 부응할 필요가 없다.(120쪽) 책은 얇고 문장들은 짧다. 로베르 브레송은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긴 호흡 대신 짧은 입맞춤, 달콤한 향기보다는 스산한 조명빛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책은 권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데이비드 린치의 (상대적으로 형편없는) '빨간 방'이 낫다. 적어도 '빨간 방'을 읽는다는 것은 트렌디한 어떤 삶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하며(서점에 깔린 '빨간 방'들을 본다면 린치가 이토록 인기가 많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트윈픽스에..

대화와 만남

행사가 끝나고 난 뒤, 많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술도 많이 마셨지만, 아직 행사 후유증이 계속 되고 있다. 나는 예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내 주위의 몇몇은 나를 매우 비즈니스적인 사람으로 이해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종종 내 취향이 특별하다고 여기지만, 일을 하면서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국제 갤러리에서 젊은 영국 작가들과 늘 가슴 설레게 하는 빌 비올라와 만났고 두아트서울에서는 정말 특별한 미술가인 온 카와라를 만났다. 성곡미술관에서는 색채를 활자처럼 읽어내는 척 클로즈를, 구 서울역사에서 진행되는 아시아프에는 거친 세상 앞에서 천천히 자신감을 잃어가는 젊은 작가들을 만났다. 그러다가 문득 내 이십 대를 떠올리자, 슬퍼졌다. 어느새 내 나이는 서른여섯이다..

Atta Kim: On-Air, 로댕갤러리

Atta Kim: On-Air 2008.3.21-5.25 로댕갤러리 사진이 무엇일까. 그렇다면 사진에 대한 글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내가 예술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 순간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예술에 대한 사랑, 또는 호기심을 데리고 찾아간 로댕갤러리 안에서 나는 (현대)사진이 표현할 수 있는 바의 어느 극점을 발견하였다. 김아타의 이전 작업들, 뮤지엄 프로젝트나 해체 시리즈, 그 외 인물 사진 시리즈를 보았지만 내 시선을 끌지 못했다. 분명 그 때도 그의 작업들은 비평적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사진 속에서 그의 카메라가 가진 즉물적이며 파괴적인 속성이 싫었다. 나는 좀더 우아한 방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사진들은 피사체를 ..

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

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지음), 안규철(옮김), 한길사 하인리히 고흐의 전기는 미켈란젤로의 일부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이 책 서두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라는 챕터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전기의 일부는 이 논란에 대한 반박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책 속에서 미켈란젤로는 예술가이면서도 피렌체 장사꾼처럼, 자기 스스로는 검소하게 살았지만 은행과 부동산 투자로 대단한 부를 가진 이로,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했던 이로 묘사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예술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매우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그려질 뿐이다. 예술(조각)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뜨거운 열정과 끊임없는 번뇌와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미켈란젤로에 대한 다른 책에서도 언..

미술 시장에 대한 메모 1

월간미술 10월호를 읽다가 메모해 둔 것을 포스팅한다. 미술시장이 팽창하는 것은 한편 대단히 고무적이지만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너무 상업적으로 끌어가려 해 안타깝다. 나는 그림을 남에게 선물한 적은 있지만 판 적은 없다. 공급이 제한된 상태에서 수요가 있는 물건이 세월이 흐르면서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은 당연한 경제 원리다. 하지만 그림은 재테크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신적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문화는 보다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트렌드에 따른 상업적인 접근보다 그림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안목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 권기찬(오페라갤러리코리아 대표), 월간미술 2007년 10월호 사실 역사가 깊은 외국의 경매에도 가격 담합이나 조작은 있어왔다. 피터 왓슨이 ..

김아타의 '온 에어(On Air) 프로젝트:뉴욕 타임스 스퀘어'

* 회화가 단색회화(모노크롬)와 텅 빈 캔버스를 지나쳐서, 더 이상 사유하기(thinking & meditation)를 그만두었다면, 이제 사진과 비디오가 그 사유와 명상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회화는 계속 사유하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 빌 비올라의 비디오 아트가 비디오로 명상하는 경우를 보여준다면, 김아타의 저 사진은 사진의 명상을 보여준다. *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의 범위는 비주얼 콘텐츠 뿐만 아니라, 그 콘텐츠를 담고 있는 TV 브라운관이나 낡은 TV 외장까지도 포함시켜야 한다. 백남준 이후의 비디오 아티스트들은 비디오를 사유의 매체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으나, 백남준은 그와는 달리 비디오/TV 라는 그 매체 자체에 매료당했다. 그래서 정신없고 현란한 백남준의 비디오 콘..

예술의 우주 2007.11.15

진실된 이야기, 소피 칼

진실된 이야기, 소피 칼(지음), 심은진(옮김), 마음산책 자기 전에 소피 칼을 만나다. 그녀가 만든 이미지들 사이로 흐르는 활자들. 하지만 서사적이기 보다는 회화적이길 원하는 그녀의 텍스트들 앞에 서서 이미지들이 움직였다. 섬세하면서도 단조로운 그녀의 산문은 이미지들과 겹쳐져 사뿐하고 경쾌한 운율을 만들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보면서, 박상순과 롤랑 바르트를 떠올렸다. 한 명은 시어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고 한 명은 이미지들로 통해 놀라운 현대적 사유를 보여주었던 사람이었다. 한 명의 시집을 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한 명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소피 칼의 이미지들이 궁금해지는 밤이다. 진실된 이야기 - 소피 칼 지음, 심은진 옮김/마음산책

장 뤽 고다르와 영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약간 읽기 불편한 번역이긴 하지만, 꾹 참을 수 있는, 국내 저널에서는 읽기 힘든 생소한 칼럼들의 모음. 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월호를 읽는다. 나에게 익숙한 이름들: 노암 촘스키, 장 브리크몽, 레지 드브레, 존 버거. 하지만 나를 감동시킨 건 기 스카르페타의 ‘장 뤽 고다르’. 영화에 대한 내 생각 - 그것은 시작하자마자 자본주의 앞에서 몰락해버린 예술, 혹은 예술가에 대한 저주다. 스크린 앞에서 이제 누구도 예술을, 영혼을,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지 돈만 이야기할 뿐이다. 그리고 예술 영화의 정신은 스크린에서 사라지자마자, 그 영상 이미지는 시간 위에 수놓아지는 서사를 시적인 감수성으로 육체를 바꾼 채, 미술관의 작은 브라운관..

예술의 우주 2007.10.24

디 워 - 마케팅의 승리

‘영화 스크린 쿼터제’로 영화인들이 데모할 때쯤이었다. 나도 한 때 영화광이었고 비디오 가게 점원이었으며 시나리오를 쓰던 때가 있었음을 떠올리면서 친구와 논쟁이 붙은 적이 있었다. 나와 논쟁이 붙었던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 8mm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며 대학 때는 단편 영화를 찍고 다녔다. 그러나 나는 직장인이었고 그는 번역가였다. 영화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나는 영화인들이 아예 보기도 싫다는 입장이었고 그는 이해해 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아직도 나는 스크린 쿼터를 주장하는 영화인들이 보기 싫다. 한국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성공적인 상품 중의 하나인 ‘영화’를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보호하기 위한 ‘스크린 쿼터제’를 주장하면서 ‘문화’니, ‘예술’이니 해대는 모..

예술의 종말 이후, 아서 단토

, 아서 단토(지음), 이성훈/김광우(옮김), 미술문화, 2004년 (Arthur C. Danto, After the end of Art – contemporary art and the pale of history)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다 읽고 난 다음 돈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 책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더구나 꽤 저명한 사람의 책이라, 내심 기대를 했는데, 거참, 한심하지. 예술의 종말이란 낯선 주제가 아냐. 이건 헤겔 미학의 주제야. 여기에서 ‘종말(End)’는 곧잘 근대성에 반대하는 후기 근대주의자들의 어투이기도 해. 그런데 여기에서 약간 유머러스한 건 단토는 헤겔을 끔직하게 좋아하는데, 후기 근대주의자들 대부분이 지독하게 헤겔을 싫어한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