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 1052

벨라 바르톡의 일요일 아침

지난 일요일 오전에 적다가 ... 이런저런 일상들로 인해 이제서야 정리해 올리는 글. 어제(토요일) 읽다가 펼쳐놓은 책, 정확하게 378페이지를 가리키고 있다. 그 페이지의 한 구절은 이렇다. '여러 의사결정에 집단의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 실패의 원인을 규정하는 것에도 집단적인 거리낌이 있다. 조직들은 지난 일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회피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제프리 페퍼Jeffrery Pfeffer의 1992년도 저서, Managing with Power: Politics and Influence in Organizations를 번역한 이 책의 제목은 '권력의 경영', 내가 이번 주 내내 들고 있는 책이다. 어제 내려 놓은 이디오피아 모카하라 드립커피는 식은 채 책상 한 모서리에 위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 김근태 의원은 어느 전시장에서 보았다. 다소 왜소해 보이는 체격에 부드러운 인상은 나에겐 놀라움이었다. 저런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인내와 신념이 숨겨져 있었던 걸까 하는... 하지만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는 전세계에서 유래없는 경제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의 유산을 단지 몇 년만에 수십 년 후퇴하는 과정을 목도하고 있다. 이 때 그는 너무 일찍 가셨다.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으로 남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출처 : '민주화의 대부' 김근태, 역사 속으로 지다 - 오마이뉴스

어느 저녁

야근 전 잠시 일 층으로 내려가, 일 층 한 모서리를 삼백 육십 오 일 이십사 시간 내내,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 초라한 뿌연 빛깔을 내는 형광등 불을 켜두고 있을 듯한 편의점에서, 따뜻하게 데운, 조각난 치킨들과 캔맥주를 마시고 올라왔다. 편의점 창 밖으로 어느 새 겨울 어둠이 내렸고, 눈발이 날렸고, 헤트라이트를 켠 검정색 차가 지나고, 이름 모를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추린 채 길을 걸어갔다. 검고 흰 젖은 길을. 그 순간 내 입술은 닫혔고 내 혀는 금방 스쳐지나간 맥주향에 대한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잠시 지나간 이천십일년과 결혼과 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편의점 치킨과 캔맥주의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무실 책상은 쌓인 실패들과 꿈들과 계획들로 어수선했고,..

크리스마스 이브

또 필름이 끊어져버렸다. 매번 다짐을 하지만, ... 결국엔 ... 또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나이가 들수록 허공 속에서 내 기억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잦아진다. 술을 마시는 횟수는 줄면서 말이다. 와인 몇 병을 마셨고, ... 그 맛에 반해 달리고 말았다. 좋은 와인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 종교를 믿지 않지만, 종교가 한없이 좋은 의미로 세상에 사용될 때를 아는 탓에, 그 종교를 믿어보기로 하자. Band Aid의 노래다. 영국 팝뮤지션들이 모여 아프리카를 원조하기 위해 불렀던 노래....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는 이 노래를 떠올린다. LP로도 가지고 있는데...아, 그러고 보니, 내 오래된 오디오를 처리해야 하는데.. ~ 다들 행복한 밤 되시길~. (Band Aid..

세상은 엉망, 그러나 술이 있으니! 오늘은 홍대 티케로~

Tout irait mal, mais il y a le theatre! 세상은 엉망, 그러나 연극이 있으니! - 장 지로두 하지만 나라면, Tout irait mal, mais il y a le vin! 세상은 엉망, 그러나 술이 있으니! 올해 최초이자 마지막 송년 모임을 홍대에서 할 예정이다. 이런저런 모임은 놀랍고도 행복한 개인 사정으로 인해 취소하고 ~. 이런 음식과 함께... 저녁 7시부터 회사 부서 직원들과 함께 할 예정이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옆자리에서 인사라도 ~.~ 이 글을 보게 될 제 친구분들께도 안부를~!! 장소는 홍대 티케(구 시루) http://map.naver.com/local/siteview.nhn?code=19867445 참조. 우리들의 친구 키에롭스키Kieslowski는 ..

기억 속에서 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싶어. 아버지는 죽지 않으려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잖아." - '서쪽부두'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희곡)의 샤를르의 대사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 이제 내년이면 나도 마흔이 된다. 서른부터 마흔까지 너무 길었다. 스물부터 서른까지는 무척 짧았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서 스물까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슬픈 플라톤보다 현실적인 헤라클레이토스가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왜일까.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현대 프랑스 최고의 희곡 작가.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곽노현 재판 후기'를 읽고

곽노현 교육감의 재판 후기가 온라인에 올라왔다. '알만한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되지'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왔었지'로 변했다. 오늘 아침 읽은 어느 기사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19세말 이후의 역사학자들이 대서사에서 미시사로 이동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법도 어찌못할 3명 바보들” 곽노현 재판 ‘화제’ http://www.newsface.kr/news/news_view.htm?news_idx=+4263 후기 원문: http://cafe.daum.net/pres.kwak/XjJN/1401 (아래 후기 일부를 인용함.) 이 타이밍에 이보훈 씨의 도 닦는 면모가 여실히 보이는 질문, “저도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양재원 씨, 이번 선거에 제일 큰 공을 세..

어느 일요일의 단상, 혹은 책읽기의 사소한 위안

책을 집중해 읽을 시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줄어들기만 한다. 이제서야 책 읽는 재미, 문맥 속에서 세상의 비밀을 엿보는 기쁨을 알게 되는 듯 한데 ... 얼마 전 펼친 한스 블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들'(Wirklichkeiten in denen wir leben, 양태종 옮김, 고려대출판부)의 한 구절은 올해 읽었던 어느 문장들 보다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가 하나 이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은 20세기 철학을 자극하는 발견들을 위한 정식이다. 그것은 우리와 맞닥뜨리는 횟수가 늘어나는 발견들을 위한 정식이다." - 한스 블루멘베르크 하나 이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20세기의 생각들은 시작되었을 지 모르겠다. 블루멘베르크의 표현대로... 하지..

어느 주말의 침묵

갑작스런 추위를 지나자, 다시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해졌다. 하지만 이건 이상 기후. 탈정치화, 탈역사화를 떠들던 학자들이 물러나자, 정치적 삶, 정치적 일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유행. 모든 것은 유행이고, 유행을 타는 타이밍은 모든 이들에게 중요해졌다. 진짜 중요한 것은 뒤로 숨어버리고 ... 가산디지털역 인근 커피숍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있다. 몇 개의 전시, 몇 개의 작품을 떠올려 보지만, 역시 예술은 우리 일상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 삶 속에서 예술은 마치 금방이라도 사라질, 공허한 대기의 무지개같다. 아무런 영향도 행사하지 못하는, 때도는 대단한 통찰을 수놓지만, 그건 마치 미네르바의 올빼미와도 같아서 그걸을 깨달은 때는 이미 시간이 한참 흘러 되돌릴 수 없을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