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298

거울에 비친 유럽, 조셉 폰타나

거울에 비친 유럽 조셉 폰타나(지음), 김원중(옮김), 새물결, 1999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일까, 아니면 안 좋은 일일까? 나는 위계질서가 분명했던 이집트 시대와 위계질서가 불분명했던 헬레니즘 시대를 비교하면서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었고 그것들이 충돌했을 때의 비극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술 양식 상의 비교이긴 하지만, 적어도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다는 건 타자를 인정하고 배려해주는 문화로 가기 보다는 자신의 시각과 가치체계를 타자에게 주입하고 강요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인간이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적 세계'에 놓여있었던 때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적 세계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타자, 다른 사상, 다른 ..

글쓰기에 대한 두 권의 책

루츠 폰 베르더/바바라 슐테-슈타이니케 (지음), 김동희(옮김), , 들녘, 2004년 초판 3쇄 스티븐 킹(지음), 김진준(옮김), , 김영사, 2004년 10쇄(2002년 초판) 책을 읽을 땐 반드시 옆에 노트를 두고 필요한 문장을 적는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꼭 서평을 쓴다. 특히 서평을 쓰지 않을 땐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읽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어 매우 불편하다. 가끔 서평을 쓸 수 없는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피터 버크의 (심산)같은 책은 매우 좋은 책이며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지만, 서평을 쓴다는 것이 꽤 부담스러운 책이다. 교과서에 가까운 책이기 때문에. 실은 쟈크 르 고프의 (문학과 지성사)같은 책도 이와 비슷하다. 이런 유의 책에 대한 서평은 쓰지 않거나 쓴다 하더라..

서양중세문명, 자크 르 고프

쟈크 르 고프(지음), 유희수(옮김), , 문학과지성사, 1995년 3쇄(1992년 초판) 사람들은 서양 중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왕과 왕비, 기사, 장원 경제, 십자군, 아더왕 이야기, 왕비와 기사 간의 로맨틱한 사랑, 높이 솟은 첨탑의 고딕 성당. 아마 이런 것들이 아닐까. 아닐 지도 모르겠다.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중세에 대해선 전문가 수준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이 책은 서양 중세의 문명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요약하고 정리한 책이라, 독자에 따라선 설명이 인색하다고 여길 수 있고 완독하는 데에 다소 많은 시간이 걸리는 책이다. 하긴 천 년 중세 문명을 일목요연한 구성과 설명으로 다 담아내기 위한 저자의 노력을 감안한다면 이 시간마저도 짧게 느껴질 정도이다. 재미있고 쉽게..

로마인이야기 14 - 그리스도의 승리, 시오노 나나미

시오노 나나미(지음), 김석희(옮김), , 한길사, 2006 자신의 시대를 알고 있다는 것, 자신의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예견하고 있다는 것, 아니 관대하고 넓게 세상을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를 견주어 문제를 진단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후대의 사람들은 주저 없이 ‘배교자’, ‘시대착오’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 * 이 점에서는 세속인도 성직자도 마찬가지다. 이 로마에서 주교를 맡고 있는 사람의 호사스러운 생활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한번은 로마에서 제일가는 부자로 알려진 사람이 로마 주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로마 주교로 삼아주면, 내일이라도 당장 기독교로 개종하겠습니다.” - 330쪽 율리아누스 황제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었고 그가 시행한 일련의 개..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장하준(지음), 형성백(옮김), , 부키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경제 발전을 도모하던 시기에는 보호 관세와 정부 보조금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켜 놓고 정작 지금에 와서는 후진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채택하고 보조금을 철폐하라고 강요한다. 과거 자신들은 여성, 빈민, 저학력자, 유색 인종에 대해서는 투표권조차 주지 않았으면서 지금은 후진국들에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면 경제발전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은 다른 나라의 특허권과 상표권을 밥 먹듯이 침해했으면서도 이제는 후진국들에게 지적 재산권을 선진국 수준으로 보호하라는 압력을 넣는다. (8쪽) 이 책은 위 인용된 문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들을 정리하고 분석한다. 아니 수많은 자료들을 찾고 분석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지도 ..

존재와 무 -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변광배

존재와 무 - 변광배 지음/살림 존재와 무 -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변광배 지음, 살림, 2005 오래 전 삼성출판사에서 두 권으로 번역되어 나온 사르트르의 를 읽으려다 여러 번 실패하고 만 나로선 이 책은 꽤나 유용한 개설서의 역할을 했다. 책의 삼 분의 일은 사르트르에 대한 이야기로 할애되어 있으며 나머지 삼 분의 이가 에 나온 주요개념들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주요 개념들로는 ‘무신론과 존재의 우연성’, ‘의식과 사물 그리고 의식의 지향성’, ‘무와 무화작용’, ‘즉자존재와 대자존재’, ‘실존의 불안과 자기 기만’, ‘타자와 시선’, ‘신체’, ‘시선 투쟁과 갈등’, ‘타자와의 구체적 관계들’, ‘실존의 세 범주: 함, 가짐, 있음’ 등이다. 철학 입문서라는 생각..

기로에 선 자본주의, 앤서니 기든스/윌 허튼

기로에 선 자본주의 앤서니 기든스/윌 허튼(편저), 박찬욱/형선호/홍윤기/최형익(옮김), 생각의나무, 2000년 ‘자본주의는 좋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라고 질문을 하면 과연 몇 명쯤 ‘좋다’라고 답할까. 그렇다면 나쁜 것인가?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매우 편파적인 책이다. 윌 허튼은 분명한 어조로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고 앤서니 기든스도 그것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습게도 이 책에 정답은 없다. 아마 정답이 나와있는 책은 없을 것이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먹어치워 버리는 현대 자본주의가 그 정답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는 좌파, 또는 중도 좌파의 시각이 아닌..

예술의 종말 이후, 아서 단토

, 아서 단토(지음), 이성훈/김광우(옮김), 미술문화, 2004년 (Arthur C. Danto, After the end of Art – contemporary art and the pale of history)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다 읽고 난 다음 돈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 책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더구나 꽤 저명한 사람의 책이라, 내심 기대를 했는데, 거참, 한심하지. 예술의 종말이란 낯선 주제가 아냐. 이건 헤겔 미학의 주제야. 여기에서 ‘종말(End)’는 곧잘 근대성에 반대하는 후기 근대주의자들의 어투이기도 해. 그런데 여기에서 약간 유머러스한 건 단토는 헤겔을 끔직하게 좋아하는데, 후기 근대주의자들 대부분이 지독하게 헤겔을 싫어한다는 점..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오오누키 에미코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 오오누키 에미코 지음, 이향철 옮김/모멘토 , 오오누키 에미코 지음, 이향철 옮김, 모멘토. 사사키는 다른 많은 학도병과 마찬가지로 강경한 반전론자였다. 그는 전쟁의 승리에 도취된 일본인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제 2차 세계대전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348쪽) 사사키 하치로오. 1923년생. 토오쿄오제국대학 졸업후 1943년 12월에 학도병으로 징병되어, 1945년 2월 20일 특공대원으로 지원했다. 1945년 4월 14일 특공대 임무수행 중 전사. 향년 22세. 해군 소위였다. (333쪽) 나에게 ‘카미카제’(특공대)는 2차 대전 말기 미쳐버린 일본군 최후의 발악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흐린 바다 위를 나는 프로펠러 비행기. 그리고 멀리 보이는 미군함. 날아오는 총알..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박찬국(지음)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 박찬국 지음/동녘 박찬국(지음), , 동녘, 2004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조차 느낄 틈도 없이 쫓겨 다니는 현대의 직장인에게 하이데거의 철학은 사치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했다. 하이데거에게 만한 텍스트도 없었을 것이고 그만큼 현대인이 당면한 근본적인 질문을 잘 드러내준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반 일리치이지 않은가. 이반 일리치로서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하이데거의 철학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이데거가 현대 문명에 대해 끔찍한 생각을 했다면, 나는 도리어 하이데거의 철학을 알게 되면서 끔찍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삶의 문제는 철학으로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성을 가진 실천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