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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영어공부를 위해 방송통신대 영어영문학과를 편입했다. 그러나 영어 공부 대신 나는 영미시의 아름다움과 셰익스피어를 알게 되었다. 문학 전공자로서, 시 창작까지 공부했지만, 영미시의 아름다움을 중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는 건, 내가 다닌 학부 과정이 형편없었거나, 내 지적 역량이 떨어졌던 탓일 게다. 


셰익스피어는 매너리즘 후반과 바로크 전반기에 속한다. 근대에서 속하면서도 근대가 시작되던 시기의 혼란스러움이 셰익스피어 극작품 속에 숨겨져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처럼, 극중 인물들의 운명을 가로지르며 절정을 지나 결말에 이르게 한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극작품들과 비교해 그 분량은 짧으며, 극적 완성도나 속도감은 최고다. 하나의 사건은 곧장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며 인물들의 감정도 마치 폭풍이 치는 해안가의 파도처럼 격정적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것들이 매너리즘적 속성이라 파악하고 이를 매너리즘 양식 속에서 해석하는 것을 방송통신대 영문학과 졸업 논문 주제로 정했다. 아래는 졸업논문계획서다. 바쁜 프로젝트 중에 겨우 시간을 내어 급하게 적어 제출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방송통신대 다니는 것은, 그냥 졸업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 칠만한 일임을 휴학을 밥 먹듯 한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작년에 졸업할 수 있었으나, 결국 하지 못하고 올 1학기에 졸업한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해보기로 하자. 


*     *  

<<맥베스>>의 매너리즘적 성격에 대하여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은 문학과 예술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시기였다. 중세가 끝났지만, 중세의 여운이 남아 있었으며(<<맥베스>>에서는 세 명의 마녀들로 표현된다), 동시에 운명의 손(또는 기독교의 질서)을 벗어나 개인의 능력, 이성과 과학을 믿는 시대로 나아가려고 몸부림친다. 그래서 한 손에는 종교를, 한 손에서는 이성을 들고 서로 갈등하면서 혼란스러워 하고 그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셰익스피어는 세르반테스와 함께 매너리즘의 가장 위대한 작가들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매너리즘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모호함은, 양식적인 측면에서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이에 필자는 1)문학에서의 매너리즘 양식의 특성을 먼저 정의하며, 2)세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의 영국과 유럽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난 다음, 3)세익스피어의 <<맥베스>>가 가지는 매너리즘적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매너리즘은 일반적으로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바로크 사이의 반동적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속하는 이들로는 말년의 미켈란젤로, 세르반테스, 마키아벨리, 엘 그레코 등이 있다. 이들은 다가오는 미래-이성의 시대인 근대-를 예감하면서도 동시에 종교적 질서에 대한 믿음(혹은 의심) 속에서 끊임없이 번민하고 갈등하는 세계를 공유한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도덕적 수단까지도 용인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하다고 말하면서 노골적인 폭로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즉 잘못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전도된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몽상(꿈)에 빠진 인물을 통해 시대착오적 현실-근대이지만 중세인-을 비아냥거리며 비판하고 절망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도 현실의 세계가 비현실적 요소(꿈, 유령, 마녀 등)로 영향 받고 흔들리며 결말에 이르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비극적 현실 속에 숨겨진 인간 군상의 진실을 보며, 그 앞에서 신의 세계에서 벗어난 인간의 개별성에 주목하게 된다. 매너리즘은 신의 세계를 떠나 인간의 세계로 가는 도정 상에 위치하면서 그 길 위에서 흔들리는 시대상을 대변하는 양식인 셈이다. 


필자는 이러한 매너리즘적 세계가 어떻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구성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구성이 그 당시 영국과 유럽의 상황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를 분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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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의 비밀. 그건 와인 잔에 맥주를 담는 허세다. 

혼자 고독한 척 쓸쓸한 척 멋있는 척... 척의 비밀. 

그건 아는 자만 아는 유쾌한 허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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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힐리즘과 문화(Nihilism en Culture) 

고드스블룸(Johan Goudsblom) 지음, 천형균 옮김, 문학과지성사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49쪽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 죽는다. 자신이 이상주의자인지 현실주의자인지, 고전주의자인지 낭만주의자인지, 플라톤주의자인지, 반-플라톤주의자인지. 심지어 인문학을 전공하는 이들 중에서도 이를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동시에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지)를 알지 못한다. 


고드스블룸이 니힐리즘을 문화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분석하고 정리하고자 한 것은 현대에 이르러 니힐리즘이 일종의 문화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어 대중화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에서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고 이 속에서 니힐리즘의 문제를 거론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니체의 니힐리즘에 많은 할애를 하고 있지만(그 정도로 니체와 니힐리즘을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가장 고귀한 가치는 상실되어 버렸다. 그 가치들은 평가절하되었다. 존재의 목적도 상실되어가고 있다. 존재의 목적에 대한 문제도 모두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있다. 이것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니힐리즘이다. '진리의 세계'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에 관한 모든 글이나, 진리로 인정되고 있는 모든 것이 허위임을 그것은 일깨워주고 있다. 니힐리즘은 '무'에 대한 감정, 즉 '허무감 pathos in vain'을 통해 절정에 도달하는 하나의 계시이다. 

- 61쪽 


특히 '진리 추구'라는 관점에서의 니힐리즘에 대한 접근(니체에 기대어)은 이 책의 내용을 진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 니힐리즘은 이 시대의 저변 문화가 된 것처럼 보인다. 


한 때 나는 '니힐리즘'이라는 단어가 더욱 유행할 것이라 여겼다. 동시대의 많은 이론들이 니힐리즘을 부추기며 '무가 바로 진리'라는 걸 대변하는 듯, 기존의 질서, 학설, 태도를 거부하고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렇게 요란하게 발언하는 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을 이어갈 때, 허무주의가 우리 시대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종교를 찾을 것이고 새로운 중세가 올 것이라고. 


체홉은 이 사태를 이미 예견한다. (실은 19세기 이후 많은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니힐리즘을 노래했다)


모든 감정과 사상은 나와는 상관없이 존재한다. 과학, 연극, 문학, 제자들에 대한 나의 모든 비판 속에서, 그리고 모든 정경 속에서 나는 가장 훌륭한 분석가조차도 발견할 수 없었던 일반적인 개념이나 살아있는 인간의 신으로 불리는 것까지도 상상으로 그릴 수가 있다. 

그것마저도 없다면, 있는 것은 오직 무 뿐이다. 

이 극빈과 심한 질병과 죽음의 공포가 몰고온 환경이나 인간의 영향이 한때 내가 생활철학으로 받들고, 나의 존재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았던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산산이 파괴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지쳐버렸다. 그렇다면 생각하고, 말하는 것조차도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조용히 앉아서 나에게 닥쳐오는 것을 맞이할 생각이다. 

- 안톤 체홉, <<음울한 이야기>>(272쪽에서 재인용) 


고드스블룸의 입장은 니힐리즘에 대한 사회문화적 차원에서의 연구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원하는 뉘앙스를 풍기지만(종종 니힐리즘이 가진 부정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그것에까지 이 책은 이르지 못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자신의 선명한 주제의식을 드러내었다기 보다는 니힐리즘을 둘러싼 니체와 다양한 작가와 학자들의 사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이지만, 니힐리즘에 대해 관심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의외로 책 읽는 속도가 빨랐는데, 저자의 풍부한 인용과 깔끔한 정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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