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가 96

한스 하케와 정치

Hans Haacke at Paula Cooper, New York (Jan 2008) (2008년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이 작품이 전시되었다.) 예술은 반드시 정치적이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 '아니다'이다. 하지만 모든 예술은 정치적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해석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어떤 작가가 '정치적 해석'을 거부한다면, 그 작가는 '정치'라는 단어가 가지는 함의과 그 광범위한 적용 범위나, 예술의 참된 의미를 모르는 작가일 것이다. 현실 정치에 대해 자주, 직접적으로 발언하는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예술가들도 있다. 그런데 이는 그들의 행동일 뿐, 그들의 예술은 그 태생에서부터 우리의 삶과 일상, 정치, 그리고 권력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어왔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박진아(Park, Jina)와 회화의 쓸쓸한 여유

박진아_마지막 한 입-everybody's leaving_캔버스에 유채_225×155cm_2008 술집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그녀도 자리를 떠나려던 차에, 마지막으로 한 입 먹는다. 적당하게 오른 취기와 추운 새벽의 허전함을 텅빈 테이블 위의 남겨진 안주가 조금의 위안이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막상 되돌아 생각해보면, 꼭 그럴 때마다 드라이크리닝까지 해서 입고 간 외투에 뭔가 떨어뜨리기 일쑤다. 다음 날 오전, 술자리를 후회하게 만드는 '마지막 한 입'인 셈이다. 작가는 일기를 쓰듯, 자신의 주변을 기록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회화의 본질은 주술이면서 기록이었다. 뭔가 바라는 마음으로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두운 동굴 벽에 벽화를 그렸고 근대 사람들은 자..

Inside Nostalghia 전 - 타라 맥퍼슨

Inside Nostalghia, by DCG and Jonathan LeVine Gallery October 31st - December 30th 2008 http://www.dorothycircusgallery.com/ 이젠 정말 예술가 천지인 것같다. 이 말은 그만큼 새롭고 혁신적인 예술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수한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 독창적인 세계를 서로 닮아있으며 서로 끌어당기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종종 한국 작가들에게 느끼는 실망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보여주어야 해도 모자랄 판국에, 어디선가 본 듯한 작품을 갤러리에서 보게 되었을 경우의 당황스러움이란 때론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론 슬프기..

마크 곤잘레스Mark Gonzales - 스케이트보드 예술

파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야 늘상 술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길 즐기다니, 그 날도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파리에 정착해 사는 선배가 작품이 좋지 않다고 했다(그 때 숙소에 그 작가의 작품이 있었다). 이유인 즉, '분명한 메시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작품이 가지는 '유려하고 감미로운 형식, 어딘가 모르게 회상적 양식처럼 보이는 초상화'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이 작가에 대해서는 다음에 확실히 언급할 예정이다)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지만, 한동안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예술가 생활을 했던 전직 화가였던 선배의 견해를 나는 무시할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보는 미술보다 뛰어..

시간, 유한함, 혹은 너의 존재 - Eric Poitevin

대학에 입학했던 게 벌써 16년이 지났다. 대학 때에도 잘 모이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한동안 모이지 않다가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해마다 한 번 정도 모이게 되었다. 그것도 동기의 삼분의 일이나 사분의 일 정도만 모일 뿐, 다들 소문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런데 문학을 전공하였지만, 문학에 속한 친구들은 몇 명 없었고 직장생활을 하거나 영화나 TV 쪽에 가있었다. 나의 경우에만 미술 쪽에 있었다. 어제 일 년에 한 번 있는 송년 동기모임이었다. 보통은 시간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가도 연말만 되면 '세월 참 빠르네'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시간은 참 빨리 흘러가고, 나이를 먹고 슬슬 지쳐가고 자조적인 웃음만을 가지게 된다. 시간에 대한 이런 생각은 언제서 부터 시작..

미술 시장과 자오 우키(Zao Wou-Ki)

Zao Wou-Ki Paysage, 65*100cm, 1950 소장: Musees de Metz, Metz www.fram-museesdelorraine.org 얼마 전 올린 "미술 작품의 가격"에서, 미술 가격을 정하는 데 한 가지 기준으로 '유행Fashion'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미술 투자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 웃고 우는 이유도 바로 이 유행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장기 투자로 미술을 권하지만, 10년 전에 한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가, 혹은 20년 전 한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가를 떠올린다면 '장기투자'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왜냐면 상당수의 작가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 하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오래 전에 고가로 구입한 작품이 지금은 거의 애물단지 수준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링 지안Ling Jian이 바라본 중국 여성들

Ling Jian, Bad girl no. 2 Oil on canvas, 250 x 180 cm. 2006 - 2007 1963년 산둥성에서 태어난 링 지안Ling Jian은 1982년부터 칭화(Qinghua) 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86년에 칭화대학을 졸업한 그는 1987년에는 비엔나에서, 1989년에는 함부르그에서, 그리고 2000년까지 베를린에서 살며 작품활동을 했다. 그 이후에는 베를린과 베이징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피악(FIAC), 퀼른 아트페어(Art Cologne), 뉴욕의 펄스(PULSE Art Fair), 런던의 프리즈(Frieze Art Fair) 등에 소개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특..

마크 퀸 Marc Quinn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캠브리지 로빈슨 칼리지에서 역사와 미술사를 공부한 마크 퀸Marc Quinn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가이나,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대단한 작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다(도리어 현대 예술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질문 제기를 한 번 귀담아 들어보는 것도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크 퀸의 'Self'라는 작품이다.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색깔을 보고 무언가를 상상했다면, 그 상상했던 그 무엇이 맞다. 4.5 리터의, 약 5달 동안 모은 자신의 피를 얼려 만들었다(첫 작품 제작 기간임). 먼저 자신의 얼굴을 석고로 뜬 다음(casting), 자신의 피를 넣어 얼려서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크기는 어느 정도 될까? Marc Qu..

리네케 딕스트라 Rineke Dijkstra

리네케 딕스트라. 1959년 네덜란드 Sittard에서 출생한 사진 작가. Evgenya, Induction-Centre Tel Hashomer, Israel, March 6, 2002 Evgenya, North Court Base Pikud Tzafon, Israel, December 9, 2002 삶은 늘 변화하고 우리도 변한다. 성격이 변하기도 하고 외모도 변하고 사는 것도 바뀌고 심지어는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는 이들마저 있다. 성형 수술을 하여 얼굴 뜯어 고치고 이민을 가, 모든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이들마저. ... ... 하지만 변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모더니티의 특징 중의 하나는 '변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존재(Being)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

다야니타 싱(Dayanita Singh)의 인도(India) - 광주비엔날레

다야니타 싱(Dayanita Singh), Go Away Closer 인도, 뉴델리 거주/작업 Nature Morte, New Delhi December 18, 2006 - January 20, 2007 사진출처: http://www.gb.or.kr/2008gb/ko/index.asp  1961년 뉴델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네 자매의 맏이였다. 사진이 그녀의 꿈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기억 속에 사진은 특별한 의미로 남아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주 그녀 사진을 찍어주었고, 그녀에게 사진에 찍힌다는 것은 가족을 떠올리게 만드는 어떤 것이었다. 보수적인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아흐메다비드(Ahmedabad)에 있는 국립디자인학교의 시각커뮤니케이션 학과로 보낸다. 그리고 그녀는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