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936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 김광우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 - 김광우 지음/미술문화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 김광우(지음), 미술문화, 2003 풍부한 도판과 인물의 삶을 따라 서술되는 이 책은 생각보다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사회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신고전주의라는 미술 양식에 대한 보다 정교한 이해보다는 이 두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된 교양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다비드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는 충분하나, 너무 전기적이라는 한계에 부딪히며 18세기 후반 고전적 양식을 가진 일련의 미술 작품들이 ..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산문집, 이레 열어놓은 창으로 차가운 새벽 공기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초가을 모기까지 들어와 날 괴롭힌다. 제 철이라 핀 코스모스는 바람의 상쾌한 노래 소리에 몸을 흔들지만, 그걸 곱게 봐 줄 사람 없는 도로 한 복판에 피어 지나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모기에게 물린 발등의 자국은 어느새 사라졌지만, 모기 소리는 계속 내 귓가를 맴돌며 흘러 다닌다. 이 모든 것들은 가을이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그것도 오염된 가을이. 오염된 몇 번의 가을을 거치자, 나도 오염되었다. 이제 매우 불순한 상태로 오염된 내가 몇 달 동안 읽은 함민복 산문집. 처음은 좋았으나, 중간은 피곤했으며 끝은 알 턱 없이 슬펐다. 나는 함민복 씨를 만나본 적 없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한다. 그의 ..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이지은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 이지은 지음/지안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이지은(지음), 지안, 2006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요즘 책을 읽고 간단하게 서평 쓰는 게 매우 어렵다. 실은 책 읽기마저 예전만큼 되지 못한다. 이 책,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도 서점에서 산 지 몇 달이 되어가는데, 이제서야 겨우겨우 완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억지로 서평을 적어보지만, 만족스럽지 못하다. 총평하자면, 이 책은 근대 유럽 사회 속에서의 귀족의 일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책이다. 또한 ‘궁정사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 이후 로베르트 엘리아스의 ‘궁정사회’나 좀바르트의 ‘사랑와 사치의 역사’ 같은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고단한 왕의 일상 우리들은 가끔 조선 시대의 임금이나 프랑스의 국왕으로 태..

돈이 되는 미술, 김순응

돈이 되는 미술 김순응(지음), 학고재 이런 책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해보게 되지만, 글쎄다. 아무래도 미술에 대한 사랑이 미술 작품 콜렉션으로 이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콜렉터가 늘어날 수록 화가, 예술가들의 삶이 윤택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그것도 글쎄다. 장문의 리뷰를 쓰려다가 포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책이 많이 나와 미술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지만, '미술 작품 = 투자 가치'로 이해하는 이 책의 기본적인 관점은 나와는 반대된다.

희망을 짓는 건축가 이야기 - 사무엘 막비와 루럴스튜디오

, 안드레아 오펜하이머 딘 지음, 티머시 허슬리 사진, 이상림 옮김, 공간, 2005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동네마다 미술학원이 있고 대학마다 미대가 있거나 그 비슷한 학과가 있다는 것. 대충 생각해도 전국 각지 곳곳에 있을 미대 졸업생의 수는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어느 화창한 일요일 오전 그들이 잠시 밖으로 나와,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예쁘게 꾸미기 시작한다면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들, 마을들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확 변할 것이라는 생각. 불과 몇 년 전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생각일 뿐이며 현실가능성이 없다. 1990년대 초반은 미국 건축계가 사회운동으로서의 건축, 시민의 참여방식, 건축 스타일의 문제를 되짚어 보는 변화의 시기였다. 신경제와 신기..

다이아몬드 딜레마

, 타릭 후세인(지음), 이세민(옮김), 랜덤하우스 중앙, 2006 이 책의 저자 타릭 후세인은 한국을 ‘다이아몬드’에 비유한다. 열강 사이에서 한국이 존재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문화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 높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현재 딜레마에 빠져 있으며 이 딜레마를 극복하고 나가기 위해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이 책의 요지이다. 그의 입장은 매우 자유주의적이며 시장 중심적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장하준/정승일의 와는 판이하게 다른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저자의 입장보다는 그가 진심으로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제 3자의 시각에서 한국의 현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문학동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지음), 김남주(옮김), 문학동네, 2001 세상에 이렇게 비극적이며 냉소적인 소설가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또한 세상에 대한 끝없는 냉소로 일관하듯이 이 소설집 또한 그러하다. 군데군데 등장하는 유머러스함마저도 로맹 가리의 냉소적인 시선을 배가시킬 뿐이다. 그의 냉소는 어디에서 시작한 것일까. 하긴 우리는 늘 어딘가에 속고 산다.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으로부터, 교과서로부터, 하이틴로맨스로부터 속고 청년 시절 사랑스럽던 그녀‘들’에게서 속고 장년 시절 남편에게서, 아내에게서, 직장 상사에게서, 동료에게서 속임을 당..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지음), 문학동네, 2002 손에 잡으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소설 읽기. 하지만 언제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소설 읽기. 얼마 만인가. 국내 소설가가 쓴 소설을 읽은 게. 매일 아침, 사무실 앞에 누군가 읽어주길 기다리며, 던져져 있는 중앙일보. 가끔 그 신문 모퉁이에 소설가 김연수의 칼럼이 실리곤 한다. 70년대산 소설가의 칼럼. 그 곳에 칼럼을 싣는 이들 중 가장 가난하리라 예상되는 이의 칼럼. 2006년에 익숙하지 않는 풍경이다. 번역 소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시절, 젊은 국내 소설가의 작품집은 늘 멀리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성공이니, 재테크니, 웰빙이니 하는 것들 중에서 젊은 소설가의 작품집은 황당한 것에 가깝다. 내 인생만큼이나. 어깨를 돌려 그의 데..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에프라임 키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에프라임 키숀(지음), 반성완(옮김), 디자인하우스, 1996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대(적인) 작품 앞에서 절망감을 느꼈을까. 혹은 그 절망감을 뒤로 숨기고 열광적인 반응, 자신의 영혼 가닥가닥이 ‘텅 빈 캔버스’ 앞에서 전율했다는 식의 거짓된 반응을 보였을까. 우리 모두는 정말 이랬던 적이 없었는가 한 번 돌이켜볼 일이다. 하지만 키숀의 ‘반-추상주의’를 이해하면서도 나의 ‘추상주의’를 철회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브 클라인의 푸른 색은 언제나 날 즐겁게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숀의 견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그의 견해는 매우 옳고 정확하다. 심지어 그가 요셉 보이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도. 나 또한 많은 현대 미술에 대한 비평문들을 읽어왔지만, 그런 비평문을 ..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버지니아 울프

, 버지니아 울프(지음), 정덕애(옮김), 솔, 1996년 문학비평가들이 쓴 문학에세이들 대부분이 그들이 가진 편협한 이론적 시야에 갇혀 일방적인 해석의 늪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잘못된 방식으로 해석하고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은 반면, 작가들이 쓰는 에세이는 적어도 작품이나 작가를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때로 더 뛰어난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 산문집 또한 그러하다. 19세기, 20세기 영국 문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도 그녀의 문장은 독자를 배려하며 독자의 눈길 앞에 순결한 그 하얀 살결을 드러내며 초봄의 햇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위장(僞裝)이 너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공손함이 너무나 필수적이기 때문에 전통과 의식을 던져 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