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936

거울에 비친 유럽, 조셉 폰타나

거울에 비친 유럽 조셉 폰타나(지음), 김원중(옮김), 새물결, 1999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일까, 아니면 안 좋은 일일까? 나는 위계질서가 분명했던 이집트 시대와 위계질서가 불분명했던 헬레니즘 시대를 비교하면서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었고 그것들이 충돌했을 때의 비극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술 양식 상의 비교이긴 하지만, 적어도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다는 건 타자를 인정하고 배려해주는 문화로 가기 보다는 자신의 시각과 가치체계를 타자에게 주입하고 강요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인간이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적 세계'에 놓여있었던 때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적 세계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타자, 다른 사상, 다른 ..

세계는 지금 이런 인재를 원한다, 조세미

조세미(지음), , 해냄, 2005 모험이 사라진 시대에 모험을 꿈꾸는 것만큼 비난받을 행위도 없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의 빈번한 모험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참 운이 좋다는 생각까지 든다. 모 대학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지만, 내가 해온 일을 보면 이와는 전혀 무관해 보인다. 미술사의 세계에 빠졌지만 뜻하지 않게 대학원 진학에 실패했고 빈번히 회사를 옮겨 다녔다. 사업을 하겠다고 하다 실패했으며 마음의 상처도 심하게 입었다. 조세미의 이 책은 대기업이나 금융권, 경영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이들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줄 수 있는 좋은 책이지만, 국내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거나 대기업의 하청을 받는 대다수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실업자, 무직자인 우리들 대다수에게 어울리지 않는 책일 지도..

글쓰기에 대한 두 권의 책

루츠 폰 베르더/바바라 슐테-슈타이니케 (지음), 김동희(옮김), , 들녘, 2004년 초판 3쇄 스티븐 킹(지음), 김진준(옮김), , 김영사, 2004년 10쇄(2002년 초판) 책을 읽을 땐 반드시 옆에 노트를 두고 필요한 문장을 적는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꼭 서평을 쓴다. 특히 서평을 쓰지 않을 땐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읽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어 매우 불편하다. 가끔 서평을 쓸 수 없는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피터 버크의 (심산)같은 책은 매우 좋은 책이며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지만, 서평을 쓴다는 것이 꽤 부담스러운 책이다. 교과서에 가까운 책이기 때문에. 실은 쟈크 르 고프의 (문학과 지성사)같은 책도 이와 비슷하다. 이런 유의 책에 대한 서평은 쓰지 않거나 쓴다 하더라..

그림 읽어주는 여자, 한젬마

그림 읽어주는 여자 - 한젬마 지음/명진출판사 한젬마(지음), , 명진출판, 1판52쇄. 블로그를 하고 난 뒤, ‘요즘 사람들은 미술에 참 관심이 많구나’ 생각했다. 그것이 다른 곳에서 퍼온 것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지만 내가 직접 서양 미술 관련 책을 내고 문화센터에서 서양미술사 강의를 하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미술이나 예술 관련 서적이 거의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가지는 관심이 깊이가 있다기 보다는 다소 키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그림들이 자신의 블로그를 예쁘게 꾸미려는 소박한(?) 목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에 적잖게 실망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젬마가 쓴 이 책에 대한 내 평가는 단호했다. 그녀는 작위적으로..

서양중세문명, 자크 르 고프

쟈크 르 고프(지음), 유희수(옮김), , 문학과지성사, 1995년 3쇄(1992년 초판) 사람들은 서양 중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왕과 왕비, 기사, 장원 경제, 십자군, 아더왕 이야기, 왕비와 기사 간의 로맨틱한 사랑, 높이 솟은 첨탑의 고딕 성당. 아마 이런 것들이 아닐까. 아닐 지도 모르겠다.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중세에 대해선 전문가 수준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이 책은 서양 중세의 문명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요약하고 정리한 책이라, 독자에 따라선 설명이 인색하다고 여길 수 있고 완독하는 데에 다소 많은 시간이 걸리는 책이다. 하긴 천 년 중세 문명을 일목요연한 구성과 설명으로 다 담아내기 위한 저자의 노력을 감안한다면 이 시간마저도 짧게 느껴질 정도이다. 재미있고 쉽게..

로마인이야기 14 - 그리스도의 승리, 시오노 나나미

시오노 나나미(지음), 김석희(옮김), , 한길사, 2006 자신의 시대를 알고 있다는 것, 자신의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예견하고 있다는 것, 아니 관대하고 넓게 세상을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를 견주어 문제를 진단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후대의 사람들은 주저 없이 ‘배교자’, ‘시대착오’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 * 이 점에서는 세속인도 성직자도 마찬가지다. 이 로마에서 주교를 맡고 있는 사람의 호사스러운 생활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한번은 로마에서 제일가는 부자로 알려진 사람이 로마 주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로마 주교로 삼아주면, 내일이라도 당장 기독교로 개종하겠습니다.” - 330쪽 율리아누스 황제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었고 그가 시행한 일련의 개..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장하준(지음), 형성백(옮김), , 부키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경제 발전을 도모하던 시기에는 보호 관세와 정부 보조금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켜 놓고 정작 지금에 와서는 후진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채택하고 보조금을 철폐하라고 강요한다. 과거 자신들은 여성, 빈민, 저학력자, 유색 인종에 대해서는 투표권조차 주지 않았으면서 지금은 후진국들에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면 경제발전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은 다른 나라의 특허권과 상표권을 밥 먹듯이 침해했으면서도 이제는 후진국들에게 지적 재산권을 선진국 수준으로 보호하라는 압력을 넣는다. (8쪽) 이 책은 위 인용된 문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들을 정리하고 분석한다. 아니 수많은 자료들을 찾고 분석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지도 ..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3월의 어슴푸레 번지는 저녁의 물컹한 검정이 손가락 끝에 닿자, 기다렸다는 듯 온 몸이 검게 물든다. 오래된 잉크를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허기에 찬 만년필처럼. 34년 살아온 나와 하루하루 일과에 치여 순간순간 변하는 나 사이의 거리는 지구와 안드로메다은하 사이처럼 멀기만 하다.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시집을 펼쳐 활자와 활자 사이에 숨어있는 시인의 마음을 잡아낸다. 다행히도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시인이 된다는 것,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받을 일인가. 그러니 웃고 즐거워하고 마냥 행복해야 할 것이 시인의 운명이거늘, 예전의 그나 지금의 그나 그렇질 못하니, 그저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으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장석남 저 새로 난 꽃과 잎들 사이 ..

인도를 읽는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외

인도를 읽는다 -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외 지음, 정택상 옮김/황금나침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요시코시 테츠오(지음), 정택상(옮김), , 황금나침반, 2005년 한 나라를 알기 위해 한 권의 책으로 될까 마는, 그래도 읽어야 한다면 쉽고 재미있으며 알찬 내용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추천해도 무방할 정도로 일목요연하게 인도를 정리해 주고 있다. 최근 중국에 이어 인도가 주목받고 있다. 이미 IT 시장에서 인도의 위상은 최고의 평가를 받아오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IT 시장뿐만 아니었다. IT 아웃소싱 시장의 대부분을 인도가 가져오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인도의 제약, 의료, 자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도의 경쟁력이 향상되고 있다. 이렇게 인도가 주목받는 ..

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오정희(지음), , 황금부엉이, 초판3쇄 산문집을 출판한 뒤, 보름 만에 3쇄를 찍은 이 산문집을 보면서 책 읽는 사람이 없다는 게 꼭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도리어 읽을 책이 없는 것은 아닐까. 신뢰할 만한 작가가 없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휙 돌고 나오고 나온다. 일간지에 실린 광고 생각부터 오정희가 가지는 개인브랜드까지. 얼마 전 어느 신문 기사에 한국 문단은 정부가 먹여 살린다는 짤막한 시평이 실렸다. 소설 써서 정부 지원금 받고 재단 지원금 받고 하면 연봉이 한 이 천 만원 정도 된다는 웃지 못할 글이 신문에 실린 것이다. 진짜 밥벌이용 소설인 셈이다. 소설가는 소설을 출판해 독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지원금 신청에 사용하고 독자는 독자 나름대로 책을 고르기도, 서점에 가서 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