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937

역사란 무엇인가, E.H.카

역사란 무엇인가 E.H.카(지음), 김택현(옮김), 까치 다 읽고 생각해보니,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보다 ‘역사학이란 무엇인가’가 더 적당한 제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학자들에게 시선이 고정된 이 책은 학문으로서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마르크 블로크가 그의 시선을 ‘인간’에게 고정했던 것과는 다소 관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위상이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비관주의자들에게는 Carr가 너무 조심스럽고 신중하며, 종종 겁을 내는 듯이 비추어지거나 억지로 낙관주의적 관점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논리적인 완결성, 또는 철저한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인류는 계속 살아갈 것이고 역사는 이어질 것이라..

떠남 혹은 없어짐 - 죽음의 철학적 의미, 유호종

떠남 혹은 없어짐 - 죽음의 철학적 의미 유호종(지음), 책세상, 2006년 초판 4쇄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생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 사회에서 죽음이 가지는 철학적 의미, 법적, 의학적 정의에 대해서 논하며, 이것이 가지는 어려움에 대해서 설명한다. 우리 사회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화장터가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런데 문제는 전국의 화장장의 수는 47개이며, 이 중 인구의 절반 가까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는 불과 4곳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화장터를 강하게 반대한다. 이로 인해 많은 사회적, 경제적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http://news.chosun.com/site/..

달려라, 아비, 김애란 소설집

달려라, 아비 김애란 소설집, 창비 쉽게 읽히는 문장, 가끔 보이는 재치 있고 재미있는 표현, 하지만 그 정도? 나라도 혹평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이 젊은 소설가에 대한 평가는 찬사와 열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김애란의 소설들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것은 무덤덤한 관찰의 시선이다. 무덤덤하게, 나(주인공)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식으로, 적극적 행위의 주체로 나서지도 않고, 극적인 심리적 갈등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정치경제학적 환경마저도 벗어나, 이 세상, 이 사회에 대한 아무런 불만도 표출하지 않은 채, 그저 특정한 위치에 서서 바라보기만을 계속할 뿐이다. 심지어는 추억도 없다. 미래도 없다. 과거가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상상이거나 공..

오늘의 세계적 가치, 브라이언 파머

오늘의 세계적 가치(Glabal Values 101) 브라이언 파머 외 엮음, 신기섭 옮김, 문예출판사 이 책의 서평을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그런데 서평보다는 간단하게, 그리고 강력한 어조로, 16명의 반-정부적이며 반-기업적이고 반-시장적인 학자, 활동가, 기업인, 언론인들이 나와 하버드대 학생들과 나눈 대화 하나하나 모두 주옥같아서, “무조건 사서 읽어보세요! 이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에요!"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16명의 실천적 지식인들, 가령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워드 진이나 노엄 촘스키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여러 실천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과 하버드 대학생들과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이 세계를 올바른 방..

거의 모든 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장 도르메송

거의 모든 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Presque Rien Sur Presque Tout) 장 도르메송Jean D'Ormesson 지음, 유정희 옮김, 문학세계사, 1997 Story는 시간 위에서 인과적 관계를 이루며 진행된다. 드라마가, 영화가, 그리고 위대한 소설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소설’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책에선 Story가 사라진 독백으로 가득하다. 소설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소설이라고 이름 붙인 것일까.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그렇다면 뭘까. 내가 보기엔 좀 있어 보이는 문장들로 구성된, 난해한 수필집이라고 하는 편이 전통적인 시각에서의 정의내리기에 가깝다. 그런데 수필집으로 정의내리더라도 이 책은 독서의 재미에서는 한..

보르헤스의 불교강의

보르헤스의 불교강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알리사아 후라도 공저, 김홍근 편역, 여시아문, 1998년 어렸을 때 곧잘 절에 가곤 했다. 할머니 손을 붙잡고, 어머니 손을 붙잡고. 때론 산 중턱에 있는 절 옆 계곡에서 놀기도 했다. 스님을 만나기도 했으며 부처의 일생을 보여주는 TV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거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읽었다. 짧게 불교를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보르헤스가 알려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보르헤스가 누구였던가. 그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제 3세계 소설가이면서 포스트모던 픽션의 대가이다. 그리고 지난 90년대 초반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지나갈 때, 보르헤스도 그 열풍의 한복판에 서서 많은 독자들을 즐겁게 주었던 소설가였다. 예전만..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정승우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정승우(지음), 책세상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지만, 다니면 다닐수록 교회가 바람직한 신앙을 추구할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탓에 몇 번 나가다가 그만 두었다. 이러한 결정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며, 기독교 교회가 보여주는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은 도리어 나로 하여금 무신앙으로 이끈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가끔, 매우 드문 경험이긴 하지만, 나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어떤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것은 소수의 현대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배타성, 편협함, 그리고 맹목적인 전투성 때문이다. 신앙이 사라진 이 시대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신중함과 관용, 사려 깊음을 가진다는 얼마나 좋을까. 아래의 인용문은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끔..

궁지, 위스망스

궁지 위스망스 단편선, 손경애 옮김, 문학과 지성사 현대의 압도적인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반-자본주의 예술 활동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를 성토하며, 안정적 삶을 희구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그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던 19세기에 반-자본주의 사상과 예술 활동이 성행했던 것일까? 그리고 현재와 19세기를 비교해보는 것은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나는 조리스 칼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의 세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들을 품었다. 자연주의 양식에 속하는 위스망스의 세 단편, ‘등짐’, ‘부그랑 씨의 퇴직’, ‘궁지’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끝내 몰락하고 마는 개인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데이비드 하비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데이비드 하비 지음/한울(한울아카데미) 서울에서 딱 일주일만 살면서 매일 아침 일간지를 챙겨 읽으며, 출근길 지하철, 퇴근길 버스를 타보자. 어떤 기분이 들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고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세상이 왜 이렇게 변했는가에 대해선 숙고할 틈도 없이, 생각하는 것을 꼭 죄악이라는 듯 여기며, 현재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진 않을까. 하긴 그렇게 채찍질해서 현대 한국이 세계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승승장구하며 살아남았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으니(아니, 많으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살아야된다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왜 이..

적, 사랑 이야기, 아이작 B. 싱어

적, 사랑 이야기 Enemies, A Love Story 아이작 B. 싱어(지음), 박석기(옮김), 문학사상사, 1986년(초판)(현재 절판되었음. 현재에는 아래 범우사에서 나온 것을 구할 수 있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홀로코스트를 만들었던 나치들과 유태인들은 평등하다. 신의 방관 속에서 이루어진 유태인 학살. 그래도 아이작 B. 싱어는 ‘신은 있다’(He is behind everything)고 말한다. ‘적, 사랑 이야기’는 197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면서 아이작 B. 싱어의 대표작이다. 한 남자와 세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러브 스토리를 표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정말 사랑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사랑을 나누고 있는 등장인물들조차 혼란스럽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