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97

로버트 카파 -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 알렉스 커쇼

로버트 카파 - 알렉스 커쇼 지음, 윤미경 옮김/강 로버트 카파 -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 알렉스 커쇼(지음), 윤미경(옮김), 강, 2006 사진이란 무엇일까. 사진가란 누구일까. 로버트 카파의 사진은 여러 번 책을 통해 보았으나, 놀랍게도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고 말았다(그의 ‘쓰러지는 병사’라는 사진은 기억에 있지만). 카파의 사진은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 세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술가적 삶을 산 것처럼 보이나, 뚜렷한 예술관을 가졌다기보다는 정처 없이 이 곳 저 곳을 떠돌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언제나 카메라가 있었다. 그의 몸에 붙은 듯한 그 카메라는 그의 튼튼한 두 다리처럼 그가 가는 곳마다..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 김광우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 - 김광우 지음/미술문화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 김광우(지음), 미술문화, 2003 풍부한 도판과 인물의 삶을 따라 서술되는 이 책은 생각보다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사회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신고전주의라는 미술 양식에 대한 보다 정교한 이해보다는 이 두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된 교양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다비드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는 충분하나, 너무 전기적이라는 한계에 부딪히며 18세기 후반 고전적 양식을 가진 일련의 미술 작품들이 ..

희망을 짓는 건축가 이야기 - 사무엘 막비와 루럴스튜디오

, 안드레아 오펜하이머 딘 지음, 티머시 허슬리 사진, 이상림 옮김, 공간, 2005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동네마다 미술학원이 있고 대학마다 미대가 있거나 그 비슷한 학과가 있다는 것. 대충 생각해도 전국 각지 곳곳에 있을 미대 졸업생의 수는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어느 화창한 일요일 오전 그들이 잠시 밖으로 나와,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예쁘게 꾸미기 시작한다면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들, 마을들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확 변할 것이라는 생각. 불과 몇 년 전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생각일 뿐이며 현실가능성이 없다. 1990년대 초반은 미국 건축계가 사회운동으로서의 건축, 시민의 참여방식, 건축 스타일의 문제를 되짚어 보는 변화의 시기였다. 신경제와 신기..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에프라임 키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에프라임 키숀(지음), 반성완(옮김), 디자인하우스, 1996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대(적인) 작품 앞에서 절망감을 느꼈을까. 혹은 그 절망감을 뒤로 숨기고 열광적인 반응, 자신의 영혼 가닥가닥이 ‘텅 빈 캔버스’ 앞에서 전율했다는 식의 거짓된 반응을 보였을까. 우리 모두는 정말 이랬던 적이 없었는가 한 번 돌이켜볼 일이다. 하지만 키숀의 ‘반-추상주의’를 이해하면서도 나의 ‘추상주의’를 철회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브 클라인의 푸른 색은 언제나 날 즐겁게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숀의 견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그의 견해는 매우 옳고 정확하다. 심지어 그가 요셉 보이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도. 나 또한 많은 현대 미술에 대한 비평문들을 읽어왔지만, 그런 비평문을 ..

그림 읽어주는 여자, 한젬마

그림 읽어주는 여자 - 한젬마 지음/명진출판사 한젬마(지음), , 명진출판, 1판52쇄. 블로그를 하고 난 뒤, ‘요즘 사람들은 미술에 참 관심이 많구나’ 생각했다. 그것이 다른 곳에서 퍼온 것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지만 내가 직접 서양 미술 관련 책을 내고 문화센터에서 서양미술사 강의를 하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미술이나 예술 관련 서적이 거의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가지는 관심이 깊이가 있다기 보다는 다소 키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그림들이 자신의 블로그를 예쁘게 꾸미려는 소박한(?) 목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에 적잖게 실망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젬마가 쓴 이 책에 대한 내 평가는 단호했다. 그녀는 작위적으로..

명화를 보는 눈, 다카시나 슈지

명화를 보는 눈 다카시나 슈지 지음, 신미원 옮김, 눌와 각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면서도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적절하게 역사적인 배경을 언급하고 다른 시대의 작품과의 비교, 다른 예술가의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다. 누가 읽어도 괜찮은 책이다. 개별 작품들 위주로 강의하는 수업에서 교재로 사용하기도 적당한 책이다. 각 작품들에 대해 이 책과는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미술 작품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궁극적인 결론은 하나일 수도 있지만(만일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해둘만한 문장 몇 개를 적어본다. 산드로 보티첼리, “사실 이 그림의 구성은 언뜻 보아 연극 무대를 연상시킨다.”(21쪽) 산..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 고종희

고종희(지음),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 한길사(2004년 초판 1쇄) 오랜만에 국내 저자가 쓴 꽤 좋은 미술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르네상스 시대로 일컬어지는 14세기에서 16세기에 작품 활동을 했던 여러 화가들의 초상화만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서양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은 많아도 특정 시대나 특정 장르에 대한 책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꽤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르네상스 시기의 초상화는 ‘본질적으로’ 권력의 양식이다. 이는 종교 권력이 물러나고 세속 권력이 이를 대체해 나가는 시기에 일어나는 일로서 연대기적으로 초상화 양식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직까지 로마의 영향권 속에 있었던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라파엘전파, 팀 베린저

라파엘전파 - 팀 베린저 지음, 권행가 옮김/예경 팀 베린저(지음), 권행가(옮김), , 예경, 2002년(초판) 예쁜 그림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라파엘전파. 대다수의 미술사가들이 그 가치를 폄하하고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미술, 그래서 '위선과 기만'의 시대로 알려진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한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미술 양식.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 라파엘 전파 화가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 어쩔 수 없이 그 가치를 인정해주기에는 그들의 작품들이 그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서술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를 시작으로 존 에버릿 밀레이, 번 존스, 매독스 브라운 등의..

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진중권

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 진중권 지음, 웅진닷컴 그림도 하나의 세계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의 인생, 각자가 처한 세계에 대해 각기 다른 느낌과 이해를 가지고 있듯이 그림의 세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그림에 대한 해석은 시대마다 틀리고 개인마다 틀린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니 특정 그림에 대한 개인의 감상에 대해 ‘너의 견해는 틀렸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경우 우리는 ‘그림에 대한 정해진 해석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미술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현대 미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끊임없이 사회적 차별이나 금기를 허물어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마리 앤 스타니스제위스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Believing is Seeing 마리 앤 스타니스제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현실문화연구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두 번 적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적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책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저 책에 대한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는데, 다들 찬사 일변도여서 이건 아닌 것같아 여러 번 고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라면 원고지 10장 정도의 분량과 슬라이드 20개만 있으면 이 책에서 다루어진 내용의 다섯 배 많은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그러고 보면 다들 현대 미술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