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35

일요일 아침의 브람스와 슈베르트

Artur Rubinstein의 피아노, Henryk Szeryng의 바이올린, Pierre Fournier의 첼로. 그리고 브람스와 슈베르트. 탄자니아산 원두로 내린 커피. 모든 것이 완벽하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온 회사 워크샵. 내가 변해야 상대방이 변한다는 오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어떤 관계. 나에게 있는 리더십과 없는 리더십. 지난 겨울부터 이어진 어수선한 마음은 다시 이어지고.. 마치 사막 한 가운데를 흐르는 나일강의 쉼 없는 물길처럼. 활짝 핀 꽃잎처럼 부드럽고 37도씨의 적절한 따뜻함을 지닌 위로와 위안이 필요한 2010년의 봄날. … 텅 빈 집에서 브람스와 슈베르트의 음악을 듣는 일요일 아침. 음악마저 없었다면 생은 참 끔찍했을 것이다. [수입..

어느 일요일의 닫힌 마음

일요일의 평온함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내 마음의 무너짐은 거침없이, 일상을 불규칙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고, 자주 불투명한 인식과 판단, 혼란과 착오, 표현력의 빈곤과 부딪히게 만들었다. 생각이 사라지는 법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 존재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데카르트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 삶이 한 번도 명증한 확실성 위에 있었던 적이 없었고 그저 그렇다고 여겼을(인식했을) 뿐이고, 데카르트도 그랬을 뿐이다. 플라톤의 번역서 한 권을 사러 나갔다. 광화문으로. 근처 흥국생명 빌딩으로 향했다. 망치질 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적인 설치 미술이자 공공미술(public art)이다. 이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유명세를 치를 만 하지만, ..

어느 일요일의 이야기

1. 쓸쓸한 하늘 가까이 말라 휘어진 잔 가지들이 재치기를 하였다. 죽음 가까이 버티고 서서 안간힘을 다해 푸른 빛을 받아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허공 가운데, 내 마음이 나부꼈다. 2. 익숙한 여행길의 낯선 파란 색이 건조한 물기에 젖어 떠올랐다 검은 빛깔의 지친 아스팔트가 습기로 물들었고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소녀의 실룩거리는 엉덩이 위로 한 다발 꽃들이 피어나 꽃가루를 뿌렸다 붉은 색에 멈춰선 도로 위의 자동차 속에서 사내들이 내려 소녀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소녀의 입가에 미소가 퍼졌고 아직 어린 나는 공포에 떨며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울기 시작해 내 눈물은 강이 되어 내 육신을 싣고 아무도 없는 바다를 향해 떠났다. 3. 나에게 혼자냐고 물었다. 그녀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어수선한 마음의 일요일 아침의 말러Mahler

어제 밤에 전 직장에서 사용하던 HP 노트북의 OS를 새로 깔았다. 무려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 아무 짓도 못했다. 스트레스가 의외로 심했다. 그 탓일까. 일요일 아침 쉬이 기분이 펴지지 않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그후'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 했으나, 되지 않았고 얼마 전에 끝난 조안 미첼의 전시를 떠올리며 뉴욕타임즈 웹사이트에서 구한 그녀 작품에 대한 몇몇 기사를 읽었다. 그 중에서 기억하는 문구. an orgiastic battlefield, 주신제의 전쟁터, 술 마시며 난리를 피우는 전투장, ... 어쩌면 미 추상표현주의가 orgiastic battlefield가 아닐까. .. 어쩌면 모든 예술 작품이, 우리 마음이, 우리 사랑이. 낡은 파이오니아 턴테이블에 카라얀의 베를린 필이 연주한 ..

레퀴엠을 듣는 일요일

햇볕정책을 지지하면서,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려다가 번번히 좌절했던, 배경없는 집안의, 야당 출신의, 상고 졸업의 전직 대통령은 자살하고, 젊은 시절 정치적 탄압이라는 탄압들을 다 받던 사형수 출신으로, 한국사람들이 떼로 수여하면 안 된다고 하던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IMF 구제금융 시기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전직 대통령이 죽고, ... 그러는 동안 남북 대화는 수익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는 기업체의 총수가 넘어가 마치 정부 관계자가 된 양 이야기하고, 전직 대통령의 장례가 좋은 기회가 되어 북의 사람들이 서울로 오고, 그러는 동안 현 정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뒷짐만 지고, ... '잃어버린 10년'을 이끌었던 두 명의 대통령이 저 세상으로 가버리고, '잃어버린 10년'에 동의했던 사람..

금요일의 출근

김포공항 옆에서 2호선 선릉역까지 오는 건, 꽤 고역이다. 지하철 안에서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를 읽었다. 대학은 오직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뿐이며, 교수들은 오늘날의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가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보여질 수 있는 것 사이의 차이를 아는 것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견해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다고 나는 느꼈다. (13쪽) ... 때때로 우리는 석공이 되고 싶은 때가 있다. 돌을 깨는 데는 의심이 깃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페이지마다 의심과 두려움 - 캄캄한 공포가 있다. - 조셉 콘라드 (3쪽) 그 사이 많은 책들을 읽었다. 허균의 누이였으며, 조선 시대 가장 뛰어난 여류 시인으로 알려진 허난설헌에 대한 책을 읽었고, 조르주 아감벤의 '호모 사..

지난 일요일, 시루SIRU에서의 한 때

와인을 즐겨 마신 지도 벌써 5년이 되어간다. 아주 우연히 와인에 빠졌다. 그 이후 와인 가이드 북만 몇 권을 읽었고, 거의 매주 와인을 마셨다. 와인에 빠지는 것만큼 위험한 짓도 없다. 재정적인 위기가 오기도 했고 보관을 잘못하는 바람에 값비싼 와인을 날려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와인을 알게 된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라 생각된다. 지난 일요일에는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와인 모임을 가졌다. 일행 중에 사진을 찍던 이가 있어, 사진 몇 장을 올린다. 시루(SIRU)라는 곳에서, 오후 3시에 만났다. 천정 위로 빼곡히 빈 와인병이 쌓여있다. 제법 좋은 인테리어 아이디어다. 생떼밀리옹 그랑 크뤼 1병, 보르도 AOC 1병, 칠레산 쉬라즈 와인 1병. 그 뒤로 보이는 디켄터. 생떼밀리옹 그랑 크뤼는 디켄팅을 ..

주말

한 두 달 전, 삼성동 인터알리아에서 요시토모 나라의 판화를 보면서, '이 사람 참 감각적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일요일 아침, 아트저널 2009년 신년호를 보면서 또 그런 생각을 했다. 마치 피부 세포 하나 하나가 낮은 하늘을 가진 어느 날, 대기 속의 물방울에 젖어, 까끌까끌하게 날이 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트저널에 실린 어느 갤러리의 요시토모 나라 전시 광고 페이지. 오래, 혼자 살다보니, 이것저것 다 해보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금붕어 돌보기와 화분들이다. 이 방 저 방 한 두개씩 있던 화분들을 현관 입구에다 모아놓았더니, 제법 보기 좋았다. 아무도 없는 낮에는 꽤 쓸쓸하고 답답하겠지만, 퇴근 후 나는 이들을 위해 온 집의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둔다. 일요일 낮에는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나,..

몽크Monk를 듣는 일요일 오전

Thelonious Monk: Blue Monk (Oslo, April 1966) Um clipe do video "Monk in Oslo". Thelonious Monk - piano. Charlie Rouse - tenor. Larry Gales - bass. Ben Riley - drums. 지난 주 내내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결국 목이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하루 이틀 지나도 풀리지 않으면 한의원에라도 가야할 것같다. 하긴 과도한 스트레스는 종종 담배와 음주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나는 여기에 충실했다. 결국 내가 자초한 일인가. 아침에 일어나 산타나의 Moon Flower와 몽크의 Brilliant Corner를 들었다. 음악만이 내 위안이 되어줄 것인가. 아니면 시인가. 폴 ..

오디오와 음악

몇 번의 오디오 교체 끝에 4년 정도 오디오에 손을 대지 않고 있다. JBL 스피커에 티악 시디, 오래된 A&R 캠브리지 인티앰프, 파이오니아 턴테이블. 캔우드 리시버 앰프와 작은 스피커 1조. 구입 금액으로만 따지자면, 다 합쳐 120만원 되려나. 하지만 여기에 잠시 쉴 수 있게까지 몇 백만원이 더 들어갔을 것이다. 늘 꿈꾸는 오디오 시스템이 있지만, 그럴 만한 경제적 여유가 되지 못하고 굳이 그렇게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중고로만 잘 따져 고른다면 수백만원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오디오 시스템을 구비할 수 있다. 단지 잘 모르고 시간 투자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을 듣는 것만큼 좋은 여가활동도 없는 것같다. 한가한 주말 오후, 한 두 시간 음악을 듣다보면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며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