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33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조중걸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 조중걸 지음/프로네시스(웅진)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조중걸(지음), 프로네시스 ‘키치’(Kitsch)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키치’를 ‘이발소 그림’으로 이해하는 것은 키치를 설명하기에 구체적인 스타일이 있는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어떤 인식론적 태도라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카르스텐 해리스도 이러한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저자들은 키치를 이발소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인식론적 태도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키치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영국 경험론을 이야기하고 현대 물리학과 현대의 추상 미술의 기원을 탐구해야만 한다. 이를 다 설명해야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실은 이..

레베카 호른 Rebecca Horn 展

레베카 호른 Rebecca Horn 展 로댕갤러리 2007. 5. 18 - 8. 19 우리가 어디로 향해 가는지 모르는 ‘시간의 배’에 승선해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깨달은 것은 몇 세기가 채 되지 않는다. 사상의 영역에서 시간과 운동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진리는 시간을 떠나 영원성에 속해 있는 것이며 변하지(운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 세계 속에서 플라톤은 한시도 이데아에서 눈을 떼지 않았으며 고대를 지나 중세는 전지전능한 신을 내세웠고 이는 근대 초까지 계속 되었다. 시간과 운동은 하나의 짝이다. 이 둘은 사상의 영역에서처럼, 예술의 영역에서도 같이 등장하며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주제를 담당한다. 레베카 호른의 작업들은 시간과 운동 속에서..

거의 모든 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장 도르메송

거의 모든 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Presque Rien Sur Presque Tout) 장 도르메송Jean D'Ormesson 지음, 유정희 옮김, 문학세계사, 1997 Story는 시간 위에서 인과적 관계를 이루며 진행된다. 드라마가, 영화가, 그리고 위대한 소설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소설’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책에선 Story가 사라진 독백으로 가득하다. 소설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소설이라고 이름 붙인 것일까.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그렇다면 뭘까. 내가 보기엔 좀 있어 보이는 문장들로 구성된, 난해한 수필집이라고 하는 편이 전통적인 시각에서의 정의내리기에 가깝다. 그런데 수필집으로 정의내리더라도 이 책은 독서의 재미에서는 한..

루이스 부르주아: 추상 展 - LOUIS BOURGEOIS : Abstraction

LOUIS BOURGEOIS : Abstraction (루이스 부르주아: 추상) A P R I L 2 0 - J U N E 2 9, KUKJE GALLERY 나는 그녀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녀의 작품을 보았지만, 그녀의 상처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그녀의 작품은 무미건조한 물음표에 가까웠고, 그녀를 향한 찬사와 열광이 되레 이상하게 여겨졌다. 결국 그녀 작품에 대한 비평을 찾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는 그녀 작품들. 내가 남성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나보다 훨씬 더 건강해서 그런 것일까. 읽어도 선뜻 그녀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다가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녀는 매우 건강해서 병적인 나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그녀가 관심을 가졌다는 기하학에서 영향 받았다..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데이비드 하비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데이비드 하비 지음/한울(한울아카데미) 서울에서 딱 일주일만 살면서 매일 아침 일간지를 챙겨 읽으며, 출근길 지하철, 퇴근길 버스를 타보자. 어떤 기분이 들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고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세상이 왜 이렇게 변했는가에 대해선 숙고할 틈도 없이, 생각하는 것을 꼭 죄악이라는 듯 여기며, 현재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진 않을까. 하긴 그렇게 채찍질해서 현대 한국이 세계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승승장구하며 살아남았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으니(아니, 많으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살아야된다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왜 이..

예술의 종말 이후, 아서 단토

, 아서 단토(지음), 이성훈/김광우(옮김), 미술문화, 2004년 (Arthur C. Danto, After the end of Art – contemporary art and the pale of history)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다 읽고 난 다음 돈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 책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더구나 꽤 저명한 사람의 책이라, 내심 기대를 했는데, 거참, 한심하지. 예술의 종말이란 낯선 주제가 아냐. 이건 헤겔 미학의 주제야. 여기에서 ‘종말(End)’는 곧잘 근대성에 반대하는 후기 근대주의자들의 어투이기도 해. 그런데 여기에서 약간 유머러스한 건 단토는 헤겔을 끔직하게 좋아하는데, 후기 근대주의자들 대부분이 지독하게 헤겔을 싫어한다는 점..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마리 앤 스타니스제위스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Believing is Seeing 마리 앤 스타니스제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현실문화연구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두 번 적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적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책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저 책에 대한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는데, 다들 찬사 일변도여서 이건 아닌 것같아 여러 번 고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라면 원고지 10장 정도의 분량과 슬라이드 20개만 있으면 이 책에서 다루어진 내용의 다섯 배 많은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그러고 보면 다들 현대 미술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무관심의 절정, 장 보드리야르

무관심의 절정 - 장 보드리야르 지음, 이은민 옮김/동문선 무관심의 절정 장 보드리야르/필리프 프티와의 대담, 이은민 옮김, 동문선 현대신서 80 영화 의 주연 배우인 키아누 리버스는 장 보드리야르의 을 읽고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책의 국내 광고에서 본 것이긴 하지만, 보드리야르가 충격적이라는 것은, 내가 보기엔 그의 사상은 기존 관념이나 세계관을 극복하기 위한 체계적인 사상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스타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과격한 논리로 밀어붙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문제는 진지함과 성실함이 미덕으로 간주되어야 할 학문의 세계 속에서도 갈수록 말장난만 심해지는 이 사상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의 말장난은 언뜻 보기엔 뭔가 대단해 보이는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여 아..

불멸, 밀란 쿤데라

불멸 - 밀란 쿤데라 지음/청년사 밀란 쿤데라, 청년사 오랜만에 뛰어난 현대 문학의 수준을 한 눈에 가늠할 수 있는 소설을 읽게 되었다.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그 형식에 있어서도 놀랍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짧은 글에서 이러한 평가에 대한 정당한 이유와 논증을 다하지 못함을 고려해볼 때, 이러한 평가는 위험한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소설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적는다면 이 소설이 현대 문학의 어떤 흐름에 이어져 있으며 무엇을 반영하고 있는가, 이와 유사한 내용이나 형식의 소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다른 예술에서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고 있는가를 논의하는, 적어도 소논문 정도는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소논문에 대한 부담을 나는 늘 그렇듯이 내 처지를 내세운다. 다만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현대..

존재하지 않는 기사, 이탈로 칼비노

존재하지 않는 기사 -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민음사 존재하지 않는 기사, 이탈로 칼비노, 민음사 1. 모든 것들이 '희극'으로 결론 나는 이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면 '존재하지 않는 자'에 의해 존재하는 자들(우리들)은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자로 인해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그 의미란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소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기만'이라 하더라도 '사랑'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까? 현대란 보이는 세계의 화려함과 편리함, 또는 현란함 속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에 의해서 아슬아슬하게 지탱되는 시대이다. 그리고 이 아슬아슬한 지탱이 얼마 가지 못할 것임을 알..